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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호 그림마실1, '조선중기, 나옹 이정'

기사승인 2020.02.03  21:4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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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옹 이정(李楨), 허균이 사랑한 천재 화가

나옹 이정은 조선 중기 화원(畵院) 화가이다. 그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공간(公幹), 호는 나옹(懶翁)·나재(懶齋)·나와(懶窩)·설악(雪嶽)이다. 할아버지는 이상좌(李上佐, 1465?~?)이고, 아버지는 이숭효(李崇孝, ?~?)이며, 작은 아버지는 이흥효(李興孝, 1537~1593)로 대대로 화원 집안이다.

이정은 일찍 부모를 여의고 작은 아버지 이흥효 밑에서 자랐다. 5세 때부터 이흥효의 가르침을 받아 10세 때에 이미 산수·인물·불화를 잘 그렸다고 한다. 13세 때인 1589년(선조 22년)에 장안사(長安寺)를 보수할 때 벽화(壁畫)와 산수화 및 천왕상(天王像)을 그렸다. 1599년에 도솔원(兜率院) 미타전(彌陀殿)에 <백의대사도(白衣大士圖)>를 그렸다. 1606년 명나라 사신으로 조선에 온 주지번(朱之蕃, 1546~1624)이 이정의 그림을 보고 칭찬하면서 “천하에 짝할 이가 없다”고 하며, 그의 산수화를 가지고 중국으로 갔다.

어느 날 정승이 이정을 불러 그림을 그려달라고 비단을 마련해 놓고 술을 잘 대접하였다.

이정(李楨), <수향귀주도(水鄕歸舟圖)>, 17세기, 23.5x19.1cm

이정이 일부러 취한 척하고 누웠다가 한참 만에 일어나, 뇌물을 가득 실은 소 두 마리를 두 사람이 몰고 대문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그렸다. 이 그림을 본 정승이 화가 나 그를 죽이려 하자 평양으로 도망갔다. 1607년 2월 30살의 나이로 서경(西京, 지금의 개성)에서 짧은 삶을 마쳤다.(허균,『李楨哀辭』)

간이(簡易) 최립(崔岦, 1539~1612)의 문장, 차천로(車天輅, 1556~1615)의 시, 한호(韓濩, 1543~1605)의 글씨를 송도삼절(松都三絶)이라 불리는데 이정은 당시 최고의 시인이었던 최립에게 시와 문장을 배웠다. 당시 봉건질서에 대해 불만을 품은 허균과, 소양강 일대에서 명문출신의 서얼 자손으로 사회적 차별에 불만을 품은 강변칠우(江邊七友)인 심우영(沈友英), 이경준(李耕俊), 이춘영(李春英, 1563~1606) 등과 친했고, 문인 신흠(申欽, 1566~1628) 등과 교유했다.

허균은 『이정애사(李楨哀辭)』에서 이정은 “글씨도 잘 쓰고 시도 할 줄 알았는데, 모두 속기(俗氣)를 벗어나 비범했다. 겉보기에는 과단성이 없어 무슨 일을 단단히 하지 못할 듯 했으나 그 속은 탁 트이고 불교(佛敎)에 대해서 경지가 매우 깊어 그의 이해력이 남보다 훨씬 뛰어났다”고 했다. 이를 통해 볼 때 이정은 불교에도 조예가 깊고, 시ㆍ서ㆍ화에 능한 인물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정은 “좋은 시절이나 아름다운 경치를 만나면 대뜸 술에 취하여 소리 높이 노래를 불렀고, 다니다가 아름다운 산수(山水)를 만나면 흥얼거리며 바라보느라 집에 돌아갈 줄도 몰랐다(허균,『李楨哀辭』)”고 한다. 이처럼 이정은 술을 좋아했고 호탕하였으며, 아름다운 자연을 만나면 집에 돌아가는 것을 잊을 만큼 감성적인 화가였다. 송대 화가 곽희는 『임천고치(林泉高致)』에서 가행(可行), 가망(可望), 가유(可遊), 가거(可居)를 말했다. 이정의 “맘에 드는 자연을 만나면 바라보느라 집에 돌아갈 줄 몰랐다”는 말은 바로 가거를 말한 것이다. 가거(可居)는 산수의 품격에서 자연의 절대적 경지에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이정(李楨), <죽하관폭도(竹下觀瀑圖)>

이정의 그림 <죽하관폭도>는 대나무, 바위, 폭포, 물의 변하지 않는 자연의 속성과 인간의 유한함을 대비하여 유한성과 무한성의 경계를 담아내고 있다.

허균은 1607년(선조 40) 1월에 이정에게 보낸 편지에서 “도복(道服)에는 띠를 두르지 않으며, 한 줄기의 향불 연기는 발 밖에서 피어오르는데 두 마리의 학은 돌의 이끼를 쪼고, 산동(山童)은 비를 들고 와서 꽃을 쓸고 있는 모습을 그려주게. 이렇게 되면 인생의 일은 끝나는 것이라고 보네”라는 글과 함께 그림을 그려 보내 줄 것을 부탁했다. 허균의 “도복에 띠를 두르지 않고”는 바로 옷을 풀어헤치고 몸가짐을 편하게 한다는 의미의 장자(莊子)의 해의반박(解衣槃礴)을 말한다. 이는 자유의 경계를 말하는 것으로 진정한 예술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을 때 가능하다는 말이다.

이정은 안견파(安堅派) 화풍을 따랐는데, 안견파 화풍은 조선 초기 세종 때의 화원화가였던 안견을 따르던 여러 화가들의 화풍을 일괄하여 말한다. 이 파의 화풍은 송대의 이성(李成, 919~967)과 곽희(郭熙, 1023~1085)를 말하는 이곽파(李郭派) 화풍을 토대로 한 것이다.

또한 당시에 유행했던 명대 절강성(浙江省) 항주(杭州) 출신의 대진(戴進)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직업화가인 절파화풍(浙派畵風), 또 수묵위주로 사대부 등 문인의 정신세계를 주로 표현하는 남종화풍(南宗畵風)등의 영향을 받았고, 전통의 화풍에 개성 넘치는 화풍을 보여준다. 이정의 대표작으로는 <기섬도(騎蟾圖)>, <한강조주도(寒江釣舟圖)>, 사람과 갈대, 강 건너 나무들을 농담(濃淡)을 적절히 운용하여 공간감을 잘 표현한 <수향귀주도(水鄕歸舟圖)> , <죽하관폭도(竹下觀瀑圖)> 등이 있다.

<한강조주도>, 찬 강에 배 띄우고

이정(李楨), <한강조주도(寒江釣舟圖)>, 17세기, 23.5x19.1cm.

이정의 <한강조주도(寒江釣舟圖)>는 차가운 강에서 배를 타고 낚시를 드리우는 그림이다. 드넓은 강 풍경이 펼쳐진 가운데 멀리 뒤쪽에 산등성이가 흐릿하게 보이고, 앞쪽에 고목이 그려져 있다. 나무 아래에는 쪽배에 앉아 낚시를 하는 사람이 있다. 잔잔한 강물사이로 낚시를 드리우고 있는 어부의 모습이 정겹다.

당시 문예작품에 등장하는 어부는 대개 세상을 관조하는 달관의 경지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이런 인물의 원형은 한나라 때 광무제의 벼슬요청을 거절하고 지금의 항주에 있는 부춘산(富春山) 아래 동강(桐江)에서 낚시하며 살았던 도가적 의미의 어부 엄광(嚴光, BC.39~AD.41)이다. 혹은 무왕을 도와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때를 만나 출사하여 치세의 역량을 발휘한 유가적 의미의 이상적 어부 강태공(姜太公, ?~?)이 있다.

<한강조주도>는 절제된 필묵의 운용(運用)과 꾸밈없는 간략함이 특징이다. 근경의 정경은 역동적인 필치와 농묵(濃墨)과 파묵(破墨)을 통해 기운생동을 드러내고 있다. 멀리 강 건너 보이는 곳은 번지듯 스며있는 담묵으로 처리하여 시간과 공간감을 보여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가까이는 본래의 구체적 형상을 담아내고 멀리는 어렴풋이 형세를 드러내는 원세근질(遠勢近質)의 정경(情景)을 드러낸다.

그림은 시대를 담아내는 거울이다. 조선중기의 그림은 그 시대를 반영하고 있다. 이 시기 회화의 특징은 명분과 의리와 절개를 중시하는 사림파로 인해 사림의 가치관을 담아내는 사군자화의 등장이다. 또한 중국 송, 명대의 산수화풍을 조선의 화가들이 점차 조선화시키고 있으며, 조선후기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의 진경산수화와 조선말기 남종 문인산수를 열게 되는 근간(根幹)이 되고 있다.

<참고하면 좋을 자료>
고연희, 『조선시대 산수화』, 돌베개, 2007
허균, 『이정애사(李楨哀辭)』

성균관대학교 철학박사(동양미학전공)

경희대교육대학원 서예문인화전공 주임교수

 

김찬호 digitalfee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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