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강 하류 기행을 다녀왔다.

박태정

그간 영산강의 규모는 영산포를 지나면서 다리 아래 직선으로 뻗어 있는 것을 본 것이 전부였다.

그건 강이라기보다는 중장비가 수시로 건드는 인위적인 수로였다. 그러나 무안, 함평, 나주로 이어지는 영산강 하류는 ‘곡강’이라 불리듯이 스스로 ‘늘어지’도 만들어내는 살아 흐르는 강이었다.

한 달 이상의 긴 장마가 이어지다 모처럼 비가 그쳤다. 전 문화원사무국장들(신안, 무안, 함평, 장흥, 해남)끼리 어려웠던 시절 서로를 잊지 못해 간간이 모임을 이어오고 있다. 모두 한 때는 각 군의 문화의 꽃이었다는 자부심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일정은 영산강 하구에 있는 못난이미술관을 출발해 늘어지전망대, 식영정, 최부 묘, 전라수군처치사영터, 영산포까지 둘러보는 것이었다.
집결 장소인 무안의 못난이미술관을 둘러본 뒤 늘어지전망대를 향했다.

1. 파군교

늘어지에 앞서 왕건이 견훤의 군대를 깨뜨렸다는 ‘파군교’에 이르렀다. 당시 왕건은 후백제의 견훤에게 중과부적이었으나, 꿈에 간조로 물이 빠진 때를 틈타 공격하라는 계시를 받고 급습해 견훤의 군대를 물리쳤다하여 파군교라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수로를 타고 내륙인 나주와 광주로 진출하는 길목이었으니 왕건으로서는 반드시 접수해야 할 군사적 요충지였을 것이다.

2. 늘어지

도도하게 꿈틀대는 거대한 용이 마치 알을 품고 있는 듯하며, 물이 감돌아 흐르다 토사가 쌓여 섬처럼 형성된 반도형 지형이다. 얼핏 한반도 지형이 떠오르기도 한다. ‘늘어지’는 축 늘어졌다는 의미에서 붙은 지명이라고 한다.

식영정과 최부 묘까지 늘어지를 중심으로 펼쳐져 있다. 이곳은 영산8경 중 2경에 해당한다. 늘어지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곡강(영산강을 무안에서 부르는 다른 이름)의 모습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열린 가슴으로 순해진 황톳빛 물결이 흐른다. 나룻배 하나를 띄워놓는다. 막걸리 추렴에 불콰해진 얼굴이 시라도 한 수 읊을 것만 같다.
늘어지전망대에서 몽탄대교를 건너 영산강명품길을 지나 식영정으로 향했다. 새로 개통한 영산강명품길에서 바라보는 곡강은 그 폭이 마치 한강을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조선시대엔 세곡이, 일제강점기에는 수탈한 수많은 쌀들이 이 물위를 지나며 눈물을 보탰으리라.

3. 식영정(息營亭)

500여 년 이상 된 푸조나무, 팽나무에 둘러싸인 식영정이 호수 같은 곡강을 내려다보고 있다. 식영정 편액 밑 연비어약(鳶飛魚躍)이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뛴다는 뜻으로, 온갖 동물이 생을 즐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식영정은 한호 임연 선생이 무안에 터를 잡은 이후 학문을 연구하고 토론하기 위해 지은 정자이다. 그림자도 쉬어간다는 담양의 식영정과는 한자가 다르다. 이곳은 영산강 주변 경관과 잘 어울려 많은 시인 묵객이 드나들었다.

식영정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이며, 중앙에 방 한 칸과 이를 둘러싼 마루로 구성돼 있다. 정자 안에서는 정면으로 펼쳐진 영산강 풍경과 들판을 조망할 수 있다.

4. 금남 최부 묘

중국 기행문인 <표해록>의 저자 금남 최부는 해남과도 인연이 많다. 최부는 당시 해남의 거부였던 해남정씨 집안의 사위가 되어 해남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당시 그는 해남정씨 가문의 또 다른 사위였던 손아래 동서 어초은 윤효정을 가르쳤다.

이는 윤선도에 이르러 해남윤씨 가문이 빛을 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밖에도 그의 학맥은 임억령과 유희춘 등으로 이어져 해남이 중앙 정계에 발을 내딛는 기반을 마련했다.

최부의 묘는 곡강이 바라보이는 늘어지마을에 위치해 있으며, 묘 앞에 서있는 비는 1949년에 건립됐다.

5. 대굴포 전라수군처치사영 터

함평군에 위치한 대굴포 전라수군처치사영 터는 전라도 수군의 최고 지휘부였다. 전라북도 옥구에 위치하고 있던 수영을 태종8년(1408)에 이곳으로 옮겨 왔으며, 목포로 이전되기까지 23년간 서남해안을 지키는 중심 역할을 했다.

그러나 수영이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어 이후 목포를 거쳐 해남 우수영으로 옮기게 되었다. 구전에 따르면 이곳에서 일찍이 나대용 장군의 가문이 귀선을 제작해왔으며, 이는 임진왜란을 앞두고 등장한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한 때 2000여 명에 이르는 군졸들이 북적였을 이곳은 논으로 바뀐지 오래다.

돌아오는 길에 김준혁 소설가의 집필실을 들렀다. 그의 집필실은 영산강 하구 몽탄대교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있으며, 소나무, 오동나무, 멀구슬나무에 둘러싸여 토굴 같은 느낌이 든다.
복날이었을까. 많은 이들이 모여 닭죽에 술추렴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눈에 띈 게 감태나무 지팡이였고, 번개 맞은 감태나무 지팡이를 연수목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감태나무는 철분이 많아 번개를 잘 맞는다고 했다. 비 오는 날 이 지팡이를 들었다가는 연수목이 아니라 단수목이 될 것만 같았다.

집필실 앞에서 영산강 하구를 바라보니 장마에 숨어 지내던 해가 모처럼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활짝 웃는다.

집에 돌아와 하늘의 달을 올려다본다. 하늘인지 달인지, 세수라도 했을까. 너무도 깨끗하다. 오늘 만난 마음 맑은 사람들이 닦아놓았나 보다.

2020. 7월 25일
박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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