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호 digitalfeel@hanmail.net

추상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 형태(Form) 해체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정치와 경제, 문화예술의 주도권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넘어간다. 당시 미국은 강대국으로 부상했고 역사는 짧지만 공산권과 대립되는 자본주의 체제를 주도하면서 성장한다. 이런 배경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회화운동이 추상표현주의(抽象表現主義, Abstract Expressionism)이다.

추상표현주의는 1940년대부터 10여 년간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해 온 특정세대 내지 미술가 집단의 다양한 작품을 총괄해 부르는 용어이다. 추상표현주의라는 말은 처음 칸딘스키의 초기 작품에 대한 평에서 사용했다. 미국의 평론가 알프레도 바가 1929년 미국에서 전시 중이던 칸딘스키의 작품에 대해 형식적으로는 추상적이나 내용적으로는 표현적이라는 의미에서 추상표현주의라고 말했다.(세계미술용어사전, 월간미술) 이후 1946년 비평가 로버트 코츠(Robert Coates, 1897~1973)가 말하면서 일반적으로 사용 되었다.

추상표현주의는 액션페인팅(Action Painting), 색면추상(Color-Field Abstract), 서체추상으로 나눈다. 첫째, 액션페인팅은 폭발하듯 분출되는 감정과 본능적 직관을 신체행위를 통해 화면에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둘째, 색면추상은 평면적으로 채색한 단색형태나 공간을 통해 명상적인 효과를 얻는다. 셋째, 서체추상은 문자도상과 흡사한 형태로 서예에 가까운 작품을 말한다.

대표작가로는 액션페인팅의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1912~1956), 윌렘 드 쿠닝(Willem de Kooning, 1904~1997), 색면추상의 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03~1970), 서체추상의 프란츠 클라인(Franz Joseph Kline, 1910~1962)등이 있다.

 

잭슨 폴록, 내 그림은 이젤에서 나오지 않는다

잭슨 폴록은 1891년 미국 와이오밍 주에서 태어났다. 1928년에 로스엔젤레스에 있는 수공예 미술고등학교에 다녔고, 1935년 공공사업진흥국(WPA) 연방미술사업계획에 화가로 고용된다.

1937년 알코올 중독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기 시작했으며, 1938년에는 신경쇠약에 걸리기도 했다.

1943년 연방미술사업국이 해체된 뒤 구겐하임이 운영하는 뉴욕 시의 '금세기 화랑'과 계약하고 첫 번째 개인전을 가진다. 멕시코의 벽화가인 호세 클레멘테 오로스코(1883~1949) 및 아프리카 원주민 영향을 받아 토템적이고 해독할 수 없는 원시문자와도 같은 그림을 그렸으며 피카소(Pablo Ruiz Picasso, 1881~1973)와 호안 미로(Joan Miro, 1893~1983) 등의 영향을 받는다.

1947년경 ‘드립 페인팅’ 기법을 사용한다. 후에 그의 전형적인 작품 양식으로 굳어졌다. 그는 이젤이 아닌 바닥의 평평한 캔버스에 에나멜 물감이나 알루미늄 물감을 붓거나 막대에 여러 색깔의 물감을 묻혀 떨어뜨리는 방법을 사용했고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 데 몇 주일씩 걸리기도 했다. 그 결과 복잡하고 역동적인 선들로 이루어진 그림이 만들어졌다.

1951년 대부분의 작품이 흑색과 백색을 주로 사용했다. 1952년 그는 <푸른 기둥들 Blue Poles>(1952)에서 다시 다양한 색채를 보여준다. 1956년 44세에 음주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대표작품으로는 <새(Bird)>(1938, 41년경), <남성과 여성(Male and Female)>(1942), <Number30,가을의 리듬>(1950), <푸른 기둥들(Blue Poles)>(1952) 등이 있다.

 

가을의 리듬, 우연이 아닌 과정의 축적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은 잭슨 폴록과 윌렘 드쿠닝이 대표적인 작가이다. 액션페인팅의 특징은 드립 페인팅(Drip Painting) 자동기술법(Automatism), 올 오버 페인팅(All Over Painting)이다.

잭슨 폴록, , 266.7x525.8cm, 캠퍼스에 유채, 1950

첫째, 드립 페인팅은 붓을 사용하지 않고 화면위에 떨어뜨리거나 붓는 회화 기법을 말한다. 이 기법은 초현실주의 에른스트(Max Ernst, 1891~1976)에 의해 사용되었으나 1947년 잭슨 폴록이 적극 사용하였다. 둘째, 자동기술법은 초현실주의에서 즐겨 사용하던 기법이다. 계획적인 것이 없이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즉흥적으로 작업하는 방식을 말한다. 셋째, 올 오버 페인팅은 화면전체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잭슨 폴록은 말한다. “그림 작업에 몰입해 있을 때 나는 무엇을 하는지 의식하지 못한다. 내가 무엇을 했는지 알게 되는 것은 일종의 ‘익숙해지는 시기’가 지난후의 일이다. 나는 변화를 일으키고 이미지를 파괴하는 등의 일을 하는 게 두렵지 않다. 어떤 그림이든 그 그림만의 생명이 있기 때문에 나는 그것이 드러내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내 그림의 원칙은 무의식이다.” 이 말은 무의식에서 나오는 무작위(無作爲)를 말한 것으로 그림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생명성을 강조한 회화관을 보여준다.

<Number30, 가을의 리듬>은 뿌리고 흘리는 드립 페인팅, 자동기술법, 올 오버페인팅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잭슨 폴록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피카소나 몬드리안은 기하학적인 형태가 존재하지만 잭슨 폴록에게는 형태 자체가 없다. 배경과 형태가 없이 뿌려진 물감자국이 화면전체에 흩뿌려진다. 그는 검은색, 흰색, 밝은 갈색, 청회색 등으로 시간을 두고 순차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바람에 흐트러진 낙엽이 겨울을 재촉하는 듯한 늦가을의 정경을 역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비평가 클레멘테 그린버그는 1960년 『모더니스트 회화』에서 회화의 모더니즘이 19세기 중엽 인상주의 화가 마네(Edouard Manet, 1832~1883)로부터 시작되어 세잔(Paul Cézanne, 1839~1906)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를 거쳐 잭슨 폴록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이는 재현적 가치를 강조한 인상주의에서, 형태를 압축한 추상주의로, 형태를 해체하는 추상표현주의로 나아가게 된다.

추상표현주의는 외형적인 형태를 모방하지 않고 그림을 통해 내면의 생명력을 드러낸다. 잭슨 폴록은 "그림은 그 자체의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나는 그것이 드러나게 만드는 것뿐이다.”라고 했다. 그의 작품세계는 1960년대 뉴욕을 중심으로 일어난 팝 아트(Pop Art)와 현대 미술운동에 영향을 주고 있다.

 

<참고하면 좋을자료>

데브라 브리커 발켄, 정무정 역,『추상표현주의』, 열화당, 2006

윌리엄 본 총편집, 신성림 역, 『화가로 보는 서양미술사』, 북로드, 2011

장 루이 프라델 저, 김소라 역, 『현대미술』, 생각의 나무,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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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 철학박사(동양미학전공)

경희대교육대학원 서예문인화과정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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