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주의(Realism), 현실을 보는 진실의 눈

19세기는 산업 혁명과 자본주의 발전으로 산업의 기반이 농업 중심에서 공업 중심으로 변화되면서 환경과 생활 방식이 달라졌다. 19세기 초반 인간의 감성과 상상력을 중시하는 낭만주의와, 19세기 중반에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려는 사실주의가 나타났다.

또한 사진의 등장 속에서 사회의 변화를 일찍이 감지하고 19세기 중반을 주도했던 것이 사실주의(Realism)이다.

프랑스 작가 에밀 졸라((Emile Zola 1840~1902)는 낭만주의와 사실주의에 대해 “낭만주의가 돋보기라면 사실주의는 도수 없는 렌즈다.”라고 했다. 여기에서 돋보기란 사회현상을 과장해서 표현한 반면 도수 없는 렌즈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直視)한 것을 말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린다는 것에는 당시 부르주아 계층에 대한 비판 의식이 담겨 있다. 영웅의 역사화를 그리던 거대한 캠퍼스가 <오르낭의 매장>에서는 일상의 평범한 인물들을 그리고 있다.

누구의 장례식인지도 모르는 인물을 이렇게 크게 그렸다. 쿠르베는 거대한 캠퍼스에 일상의 죽음을 담고 있는 것이다. 르네상스 후기 매너리즘 시기 인간세계와 천상의 세계를 관념적으로 그린 엘 그레코(El Greco 1541~1614)의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과 비교된다.

사실주의 미술의 특징은 첫째, 미술가가 경험할 수 있는 현실에서 일어난 일만을 그림의 주제로 삼았다. 둘째, 주제를 아름답게 이상적으로 수정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대로 표현했다.

대표적인 작가로는 귀스타브 쿠르베, 영국의 현실사회에 대한 풍자적인 그림을 그린 석판화의 창시자 오노레 도미에(Honore Daumier 1808~1879) 등이 있다.
 
쿠르베, 나에게 천사를 보여 달라!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 1819~1877)는 1819년 프랑스 콩테지방의 작은 도시 오르낭에서 태어났다. 그는 대대로 이어온 부유한 목축업자 집안이었다.

1840년 21살 때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파리로 나와 아카데미 쉬스에 입학해 루브르 미술관에서 바로크시대의 거장 렘브란트 등의 작품을 모사하면서 그림의 기초를 다졌다.

1841년부터 1847년까지 쿠르베는 매해 살롱에 여러 작품을 출품하지만 심사위원들에게 통과된 작품은 <검은개가 있는 초상화>(1844), <기타치는 젊은이>(1845), <자화상>(1846), 뿐이었다.

1849년 쿠르베 작품 모두가 입선하고 <오르낭의 저녁식사이후>가 2등상을 수상하며 미술관에 소장되는 등 화단에 주목받게 된다.

이 해 그의 사실주의 대표작인 <돌깨는 사람들>, <오르낭의 매장>등이 그려진다.

1855년 나폴레옹 3세가 제1회 파리만국박람회를 열었다. 부대행사로 개최된 국제미술전에 정기살롱전과 국제미술전(총28개국 참여)이 동시에 열려 비유럽권까지 참여하는 당시 최대의 미술축제였다.

쿠르베는 <화가의 작업실>(1855), <오르낭의 매장>이 심사위원들에 의해 작품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전시를 거부당한다. 이에 분노한 쿠르베는 만국박람회 근처에 알프레드 브뤼야스의 후원으로 전시관을 지어‘리얼리즘’이라는 명칭으로 전시한다.

쿠르베는 나폴레옹 3세 폐위 이후 파리 코민시기(1870,71)의 소요에 가담하게 되고 단명한 혁명정부의 위원으로 일했다.

이때 나폴레옹 1세 동상의 파괴책임으로 투옥되었다가 석방 후 스위스로 망명 한다. 1877년 망명지인 스위스에서 전 재산과 전 작품이 경매에 넘어가고 58세에 세상을 뜬다.

쿠르베는 지인이 천사를 그려 달라는 부탁에“나는 천사를 그리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실제 보이지 않는 관념적 사유를 지양(止揚)하고 현실의 모습에 주목했음을 알 수 있다. 대표작으로는 <오르낭의 매장>(1849,50), <돌 깨는 사람들>(1849, 50), <화가의 작업실>(1855)등이 있다.

돌 깨는 사람들, 사실 그대로

쿠르베의 <돌 깨는 사람들>은 누더기 옷을 입고 망치로 힘겹게 돌을 깨고 있는 노동자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쿠르베는 소외된 계층의 진실한 모습을 드러내고자 했다.

이 작품이 1850년 파리의 살롱전에 전시되었을 때 아름다운 이상적인 모습을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생생한 삶의 모습을 보고 추하다고 비판하였다.

쿠르베, <돌 깨는 사람들>, 유화, 190x300cm, 1849,50년

그림 속으로 들어가 보자. 소년과 노인이 돌을 깨고 있다.

낡고 헤진 셔츠를 입은 소년은 무거운 돌을 한쪽 다리에 받치고 있고 노인은 너덜너덜해진 조끼에 구멍난 양말을 신은 채 망치질을 하고 있다.

고된 노동을 하는 서민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눈에 보이는 사실만을 그리는 것이 사실주의 미술의 특징을 보여준다.

쿠르베는 말한다. “지금 예술가에게 필요한 것은 진실을 그리기위해 현실을 솔직히 바라보는 열린 눈이다. 머리가 아닌 눈으로 세상을 응시해야 한다.

자신의 눈으로 삶을 바라보는 예술가만이 살아있는 예술을 창조할 수 있다.”이 말에 서 알 수 있듯이 ‘사실 그대로’를 표현함으로써, 추한 것 역시 진실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미술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소실되어 원작을 감상할 수 없다.

1839년 루이 다게르(Louis J, M, Daguerre 1787년~1851)의 사진전을 보고 사람들은‘회화는 이제 끝났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사진술이 개발된 뒤에도 쿠르베의 사실주의 미술은 살아남았다.

쿠르베는 19세기 중반 당시 유럽, 특히 파리의 민중들의 삶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고 있으며 이후 마네(Edouard Manet 1832~1883)등 인상주의에 영향을 주었다.

<참고하면 좋을자료>

사이토 다카시, 홍성민 역, 『명화를 결정짓는 다섯가지 힘』, 뜨인돌, 2010.
오광수, 박서보 감수, 『귀스타브 쿠르베』, 도서출판 재원, 2004.
이명옥, 『센세이전』, 웅진지식하우스, 2007.
윌리엄 본 총편집, 신성림 역, 『화가로 보는 서양미술사』, 북로드, 2011.
제임스 팰패스, 정헌이 역, 『리얼리즘』, 열화당, 2003

성균관대학교 철학박사(동양미학전공)

경희대교육대학원 서예문인화과정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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