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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명량해전과 어란여인 이야기’간판 세우다

기사승인 2017.09.20  22:4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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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해전이 끝난 다음날, 1597년 9월17일 해남군 송지면 어란마을 앞바다에서 한 여인의 시체를 수습한 어부가 시신을 근처 소나무 밑에 묻고 묘 앞에 석등을 세우고 불을 밝혔는데 지금도 매년 정월 초하루가 되면 동네주민 모두가 정성스러운 제사를 지내고 있다.

이 여인에 대해 어란마을 주민 김학채 씨는 “1968년도에 당할머니 제사의 제사장(祭司長)으로 제사를 모셨는데 그날 밤 꿈에 여낭터(어란 여인이 투신한 자리)밑 바다에서 한 여인이 뭍으로 올라와 집앞에 이르는 꿈을 꾸었다”며 “그때까지 당할머니가 누구인지 몰랐으며 구전에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여인으로 어르신들이 들려준 바 있다”고 전했다.

13대133, 이 중과부적의 싸움에서, 세계해전사에 길이 빛나는 대승으로 이끈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 해남우수영과 진도 녹진을 잇는 진도대교 아래 오늘도 도도히 흐르는 울돌목, 이곳이 바로 명량해전의 현장이다.

‘사즉생, 생즉사’ 불굴의 의지로 무장하고 강인한 리더쉽을 발휘했던 이순신이지만 명량해전이 끝나고 책상 앞에서 써내려간 난중일기에서 그야말로 ‘천행’이었다고 할 만큼, 너무나도 힘들고 스스로 백번 돌아보아도 벅찬 싸움이었음을 알 수가 있다.

이 명량해전의 승인에는 이순신 장군의 용감무쌍, 탁월한 전략과 지략, 그리고 중요한 정보와 첩보가 있었다는 것. 정유재란 당시인 1597년 9월 14일자 난중일기에 ‘어란진에서 있었던 일로 김중걸이 왜에 붙잡혀 왜선에 감금될 때 ‘김해인’ 이라는 여인이 결박을 풀어주며 기밀을 제공했다‘고 되어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선조 30년(1597년) 이순신은 왜선중에서 여인으로부터 정보를 탐지하여 곧장 장계하였다’고 되어있다는 것이다.

이 전무후무한 13대 133의 해상전투에서 영웅 이순신 장군의 승리에는 놀랍게도 ‘어란’이라는 한 여인의 첩보전에 기인한 것이라는 주장이 10년 전 해남 송지면에 사는 박승룡 옹으로부터 나온 후 이제야 이 어란 여인은 계월향, 논개와 더불어 3대 구국의 여인으로 우리앞에 섰다.

2017년 9월 20일 오늘, 어란 마을 입구에 어란 마을주민이 십시일반하여 만든 ‘명량해전과 어란여인 이야기’간판 제막식이 열렸다. 지난 9월 8일 ‘국립 진도자연휴양림’에 이어 두 번째 제막식이 열린 것이다.

이날 제막식에는 박승룡 옹을 비롯해 강인석 송지면장과 송지면 기관 사회단체장, 명현관.박성재 전남도의원, 이길운. 조광영 해남군의원 등 지역정치인과 박옥임 순천대교수, 이근배 숲속의 전남사무국장, 손문금 전남여성플라자원장, 배충진 해남신문편집국장 등 역사와 문화 관계자와 어란 마을 주민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김신춘 어란번영회장은 환영사에서 “오늘 제막식은 420년 전 ‘어란 여인’이 깨어나는 시간이다”며 “어란 여인은 어란 마을에서 시작하지만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알 수 있는 호국의 여인으로 될 때까지 다 같이 노력해 가자”고 말했다.

이어 이근배 숲속의 전남 사무국장은 어란 여인 발전에 관한 인사말에서 “어란 여인 발굴, 이보다 더한 값진 일이 또 있을까?”하면서 “과거에는 지역 발전의 원동력은 물질에 있었지만 이제는 문화콘텐츠가 얼마나 증요한가를 곧 느끼게 될 것”이라며 “어란 여인 이야기는 해남은 물론 전남, 나아가 대한민국을 살리는 하나의 큰 콘텐츠로 다가올 것을 확신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박승룡 옹에 대해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뜻대로 되지 않아 마음 아파하는 것을 지켜보았다”며 “반드시 어란 여인은 박 선생이 원하는 만큼 우리들에게 우뚝 서는 날이 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옥임 순천대 교수는 “여수 거문도에 가면 영국군 묘지가 있는데 주한 영국대사로 부임하면 첫 번째 하는 일이 거문도 영국군 묘지 참배”라면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에 대한 존경과 예의를 배울 수 있다고 소개하고, ‘명량대첩과 어란’이라는 역사적 스토리가 있는데도 이제껏 우리는 몰랐다는데 가슴 아팠다고 말했다.

“다행히 박승룡 선생의 노력으로 잘 진행되어 이제 ‘어란’은 해남, 전남, 국가적으로 잘 알려지는 것, 이것이 저희가 해야 할 일이다”며 “콩 하나하나는 낱알에 불과하지만 모아져 메주가 되고 간장과 된장이 되는 것처럼 오늘 제막식을 기점으로 명량대첩과 어란 여인을 발전시켜가자”고 당부했다.

이어 명현관 전남도의원은 “명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의 승리에는 호남의 민초 특히 해남의 민초들이 기여한바가 크다고 생각한다”며 “역사적으로 의견이 다를 수 있지만 어란 여인이 이순신 장군의 승리에 기여한 이야기는 사실 관계는 접어 두더라도 어란 여인은 지역의 문화콘텐츠로 관광자원이 되어 지역 발전의 하나의 동력이 되도록 함께 힘을 모으자"고 말했다.

또한, "그동안 박승룡 옹으로부터 어란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나도 많이 듣고 성역화 하는 지원도 협의하면서 도의회 차원에서 나름대로 노력한다고 했으나 아직도 많이 부족한 것 같아 아쉽지만 앞으로 더 관심을 갖고 함께 노력하자"고 밝혔다.

손문금 전남여성플라자원장은 “저희 기관에서 하는 일은 역사적으로 열심히 활동한 여인을 찾아 세상에 알리는 일”이라며 “그동안 어란 여인을 몰라서 정말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말하고 “올해 저희 기관에서 고정희 시인 등 10명의 여인을 선정해 사업을 진행했고, 내년에는 어란 여인을 알리는 작업을 착수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어란 여인이야기는 박승룡 옹이 일제 강점기 때 25년 동안 해남에서 순사로 지낸 일본인 사와무라 하지만다로가 지은 유고집 '문록경장의 역'을 접하고 부터인데 박 옹은 이 책을 지난 2007년 일제시대 해남에서 살았던 일본인들의 모임인 ‘해남회’의 세기 준이치 회장으로 부터 건네받았는데 이 유고집에서는 일본군이 명량해전에서 대패한 원인을 어란진에서 있었던 간첩사건 때문이라고 규정하고 있다는 것.

이는 역으로 생각하면 일본에서 간첩은 곧, 당시 조선의 입장에서는 충신이 아닐 수 없는 것 아닌가?하는 결론을 얻고 본격적으로 어란 여인 발굴에 나서게 된 것이라 한다.

이 이야기의 결론은 1597년 명량해전을 앞두고 어란진에 주둔한 일본군 장수 ‘간 마사가게’는 이순신 장군의 간첩 어란 여인과 사랑에 빠져 무의식중에 명량해전으로의 출전기일을 발설하고 마는데 어란은 이를 김중걸을 통해 이순신에 연락, 조선군은 이 결정적인 정보로 명량해전을 대비하여 대승을 거두게 된다는 내용이다.

 

손은수 취재부장 dmstn046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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